


다혈질
- 단정한 복장과는 달리, 소위들 말하는 얌전하다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많이 멀다. 성격이 불같아 감정표현 자체가 굉장히 격하다. 본인이 납득할 수 없는 일에 버럭 발끈하기도하고 다른사람들과 사소한 문제로 말다툼이 펼쳐지기도 하는 참으로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호전적이라고 해야할까, 강인한 성격이 때로는 장점으로 와닿을 수도 있었겠지만 단점 또한 많은 축에 속해 타인에겐 귀찮은 성격이었다. 어찌보면 굉장히 헛점이 많은 사내였다. 눈치는 그럭저럭 있는 편이긴 한데.. 다른 사람들의 눈을 그다지 신경쓰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그렇게 더 나아갈 수 있었던 것 같기도 한 듯. 가장 단순해보이지만 여러모로 어디로 튈 지 모르는 공같이 속을 모르는 인물이다.
선의?
- 이미지와는 달리, 예상 외의 모습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사람과 사람간의 예의와 배려를 알고 있었고, 의외로 남을 잘 챙겨주기도 하는 다정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내성적인 사람들은 그것이 오지랖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겠지만.. 제 주변사람이 곤란에 처해있는 걸 마냥 보고만 있을 재간이 전혀 없었다. 그는 혼돈선의 성향이 강했다. '권선징악' 그의 사상에 가장 가까운 성어라고 할 수 있겠지. 제 기준에서 불의를 보면 머리보다 본능적으로 몸이 먼저 움직였다. 그 기준은 평범한 사람들의 윤리의식과 비슷했지만 자신 혹은 제 주위사람들을 해한 사람이나 부조리한 일을 하는 사람에게 주로 화살이 향했다. 그는 자신에게 돌아오는 불이익을 고려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제 나름대로의 정의를 행했고, 그로 인한 불이익이나 이익 또한 제대로 값을 치뤄 받아내었다.
성급한
- 한국인은 빨리 빨리. 뭐든지 느리게 일을 처리하는 법이 없었다. 식사를 할 때나, 걸음걸이 자체도 남들보다 한 템포를 더 앞서는 편. 작은 결정에서부터 중요한 결정도 성급하게 서둘러 내리는 경향이 있어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보고 있는 경우도 많은 것 같다. 피해의 규모가 꽤 커지기도 하니, 요즘엔 조금씩 자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그렇지만 자제를 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남들보다 반 박자는 더 빠르게 행동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무언가를 충분하게 생각하고 선택할 여유가 본인의 마음에 없을 때엔 그나마 가장 나은 한 가지를 무작정 선택하고 보는 경향이 있다.
자유로움
- 건반을 칠 때에는 그렇게 정확하고 빠르게 치면서, 피아노 의자에서 엉덩이만 뗐다하면 사람이 어떻게 그렇게 변할 수 있나 싶다.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로 무언가에 구속되고 얽매여있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 말 그대로 틀에 박힌 행동이나 패턴이 없는 사람으로 그 행동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 같다. 주제를 볼 때 접근하는 방법이 남들과는 조금 달랐다. 많은 사람들이 나무를 볼 때 그는 그 안에서 숲을 보기도 했고, 모든 사람들이 o를 외칠 때 그 혼자 x를 외치기도 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종종 있는 듯. 자기만의 생각이나 예술적인 사고방식이 확고하기 때문에 그것이 다른 사람들과 차별화를 두다보니 자유롭게 보이는 것 같았다.
그 외
- 감수성이 풍부하다. 감동적인 내용의 영화나 소설 같은 미디어를 보며 눈물을 펑펑 짜내는 일도 종종 있는 편. 본인은 우는 것 자체가 창피해 벌개진 눈을 벅벅 비비며 안 울었다고 애써 우기긴 하지만 누가 봐도 티가 다 나는 거짓말인 경우가 대부분. 이렇게 일상생활에서도 숟하게 드러나는 그의 성격이지만 가장 큰 진가를 보일 때에는 그의 연주가 시작되었을 때이다. 풍부한 감수성 덕분에 연주에 누구보다 다양한 감정을 담아서 청중에게 실어보낼 수 있고, 그것은 그의 가장 큰 강점이 되기도 했다.
- 가장 크게 드러나는 감정이 분노일 뿐, 감정표현 자체가 풍부하다. 호탕한 성격의 대표적인 예. 기쁨이면 명쾌하게 웃어보이며 기쁘다 말하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고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사람. 장난기도 많고 융통성도 있어 마냥 험한 얼굴과는 달리 상황에 따라 부드럽게 이리저리 변하기도 한다. 성격과 얼굴 사이의 차이가 많이 나다보니 사람들간의 첫인상과 현인상의 차이가 굉장히 많이 나는 편이다.
- 흡연자. 평균적으로 이틀에 1~2갑을 피운다. 헤비 스모커까지는 아니더라도 시간죽이기나 스트레스 해소용이라며 빈 시간에 자주 담배를 태우곤 했다. 사방이 뻥 뚫린 길거리가 아니라면 어디서든 자주 담배를 물고 있는 듯. 꽤 관리를 열심히 하는지, 평소엔 그렇게 큰 불편을 못 느낄 정도로 담배향을 지우고 살지만 담배를 태우고 난 바로 직후는 몸에서
은은하게 담배향이 나기도 했다.
- 프로정신이 굉장히 뛰어나다. 컨디션이 곧 그의 연주에서 드러난다는 생각 때문에 몸관리도 꽤 철저한 편이고, 곧 죽을 것 처럼 아파도 무대를 다 끝내고나서 쓰러질 사람이라면 사람이었지, 무대 위에선 그 누구보다 완벽함을 추구했다.
웬만한 사정이 아닌 이상, 개인의 사소한 사정을 공적인 일에 절대 연결시키지 않는다.
웬만한 게 아니라면 큰 일이 일어나도 태연하게 제가 할 일을 천천히 치뤄나갔다. 일에 관해서, 그는 완벽한 프로였다.
-손과 관련된 접촉에 굉장히 예민하다. 본인이 직접 하는 스킨쉽은 스스럼없고 그렇게 큰 상관을 쓰지 않는다.
다만 누군가가 손을 예고없이 잡는다거나, 트러블이 일어났을 때 손을 건드리려고 하는 등
그러한 고의적인 행동에는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다.
- 직업병일까? 한시도 손을 가만히 두질 못하는게 그의 습관이었다. 예를 들자면 골똘히 생각을 하거나 멍하니
아무생각이 없을 때 무의식적으로 책상을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린다거나, 피젯큐브를 비는 시간마다 하염없이
누르며 시간을 먀낭 하릴없이 보내는 것들이 그가 하는 작은 습관들에 속했다.
다른 사람들의 눈엔 그렇게 좋아보이는 습관은 아닌지라, 그의 주변인들은 하나같이 좋지 않은 습관이라며
핀잔을 주곤 하지만, 아직까진 고칠 생각이 그렇게 크게는 없어보인다.
- 평소에도 음악 듣는 걸 즐겼지만 그 중에서도 피아노나 바이올린 곡을 듣는 걸 좋아했다.
원래부터 바이올린의 반주자로 시작한 피아노였고,
어릴 적에 바이올린을 했던 아는 형과 함께 자주 합주를 맞춰보곤 했던 기억이 있어 그 애정이 더욱 남달랐다.
그래서 그런지 그의 집엔 바이올린 음반 시디나 레코드판이 따로 진열되어 있다.
- 단 음식을 좋아한다. 가장 좋아하는 건 초콜릿이지만 사탕도 자주 먹곤 한다.
아예 그의 대기실이나, 집 안에 작은 간식 바구니가 여기저기에 놓여있을 정도.
- 은근 키에 대한 열등감이 심하다. 자기보다 키 큰 사람이 자신을 깔보며 내려다보는 시선을 매우 싫어하고,
키에 대한 이야기만 꺼내도 괜히 찔려선 마구 역정을 내기도 한다. 말은 안해도 키가 작은 것에 대한 콤플렉스가
적지 않은 것 같다. 당신이 만일 그 보다 키가 크다면 혹시 모르니 광호 앞에선
키와 관련된 소재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을 추천하지 않는다.
- 말투는 남녀노소 상관 없이 반말을 사용한다. 본인이 보았을 때 어른이라고 생각한다면 중간중간 존댓말을 섞기도
하지만 하는 모양새가 영 엉성하다. 대부분 무의식적인 반말 다음에 '...요.' 를 어색하게 붙이는 게 전부.
친근도에 따라 '야, 너, 형님, 누님.' 등등 타인을 지칭하는 호칭도 다양하고 자유롭게 달라진다.
Like - 피아노, 바이올린, 초콜릿
Hate - 국화꽃, 비 오는 날


- 새까만 머리카락과 검은빛 눈동자. 머리카락은 빛을 받으면 받을수록 훨씬 검게 보인다, 눈 색은 동공이 작아 잘 보이지 않지만 햇빛이나 인공적인 빛에 비춰보면 옅은 회색빛을 띄고 있다.
흔히들 말하는 피아니스트의 단정한 이미지의 틀을 깬 얼굴상이다. 얼굴은 잘생겼다보다는 험하게 생겼다가 더욱 어울린다. 전체적으로 가늘고 날카로운 눈매나 굵은 눈썹, 굳은 입매 전부 그의 험악한 인상에 한 몫을 했다. 웃는 상이라기보단 무표정이라고 해도, 화가 난 얼굴에 훨씬 더 가깝다.
- 옷에 가려져 제대로 보이진 않지만 걸치고 있는 걸치고 있는 자켓만 벗어도 꽤 다부진 몸매라는 걸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다. 고된 훈련이나 노동으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근육이 아닌, 처음부터 관리를 잘 한 티가 나는 깔끔하고 군더더기 없는 몸매다. 만지거나 건드려보면 탄탄한 느낌이 드는 정도.
- 키가 작아도 비율이 좋다. 키 큰 사람 옆에만 서지 않는다면 키가 커 보여 170초중반 언저리까지는 커버가 가능한 듯.
- 목 뒤 날개모양 타투가 있다.
- 신발 굽은 4cm

![]() 광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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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피아니스트
피아니스트, 피아노를 전문적으로 연주하고 직업으로 삼는 사람으로, 음악의 예술성을 그들의 손으로 전파하는 사람들을 말한다.
그의 시작은 미미할지 몰라도 끝은 항상 성대하게 터졌다. 매스컴, 관중 모두에게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의 반주자. 사람들에게 그의 얼굴을 처음으로 알리는 첫 계단이었다. 그의 파트너가 꽤 이름을 떨치는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였던만큼 그 날 많은 관중을 비롯한 기자들도 모두 그들의 연주를 주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무대에서 선보인 곡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a minor op.28.' 이 날 이 곡을 연주함으로서 그는 바이올리니스트와의 완벽한 상호작용을 펼쳐보였다. 반주자와 연주자 모두를 돋보인 둘의 합주가 관중 모두에게 인상적으로 와닿았던 그 날의 연주가 그의 재능이 피어나게 된 계기로 작용하게 되었고, 그와 파트너의 연주를 들었던 그 날의 관중들은 모두 반주와 바이올린 모두가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연주였다며 입을 모아 말했다. 그는 바이올린 한 발짝 뒤에서 다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했던 그 피아노를 바이올린과 동등한 위치에 끌어올려놓아 반주가 덤이 아니다 라는 편견을 무서운 존재감으로 완벽하게 깨부수고 사람들에게 직접 각인시켰다. 색안경을 깬 반주자. 사람들은 신예였던 광호를 그렇게 부르기 시작했다.
화려했던 첫 무대 그 이후, 그는 본격적으로 반주자가 아닌 진짜 피아니스트로 데뷔해 예술계에서는 꽤 유명하게 이름을 떨쳤다. 예술계라는 좁은 장르 특성 상, 피아노 곡이나 음악에 관심이 없는 몇몇 일반인들에게는 이름을 알리기 어려웠지만, 클래식 오페라 직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나 예술을 깊게 판 사람이라면 못해도 그의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다고들 이야기한다. 묵직하게 힘을 실어 그가 하나하나 건반을 누를 때마다 전해지는 강한 진동이 관중을 자극했고, 자칫하면 소음이 될 수 있는 강한 음도 피아노 전공자답게 박자, 건타의 정확성등 유려한 테크닉과 기교로 불쾌하지 않게 풀어내는 재주가 있다는 평을 받았다. 서정적인 곡 보다는 주로 강하고 묵직한 곡을 선곡하기로 유명하지만, 최근에는 그 수가 적긴해도 서정적이고 아름다운 곡도 그의 공연에서 몇 차례 선보인 적이 있었다. 피아노를 잘 치는 사람은 세상에 차고 넘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그 분야에서 이름을 떨칠 수 있었던 이유는 힘도, 기술도 모두 한 몫했지만 자기만의 확고한 스타일과 호소력 짙은 감정선이었다. 워낙 감정폭이 넓고 표현력이 큰 사람이다보니 크게 본다면 화려한 기교와 다양한 감정표현이 그의 강점이라고 볼 수 있었다.
데뷔한 지는 그 햇수가 벌써 8년차에 접어들고 있다. 많은 햇수가 지나며 그의 인지도와 감정선, 기술과 같은 입지는 더욱 단단히 다져지고 있다. 매 년마다 정기적으로 그의 연주회가 열리면 표석은 언제나 매진. 국내를 넘어선 해외에서의 인지도도 음악계 사람들과 각종 포털사이트등을 통해서 착실히 쌓여가고 있는 중이다. 음악인의 세월로서는 짧다면 짧은 그 8년의 시간 안에 빠르게 정상에 오른 실력을 높이 사 피아니스트로서의 the first 재능을 인정받았다.
★★★☆☆


담배케이스
지포라이터
피젯큐브
흰 백합의 자수가 놓여있는 검은색 손수건
우황청심원

※주의※ (트리거워닝)
캐릭터의 스토리에 독자의 트라우마를 당길 수 있는 트리거소재(자살)가 쓰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실을 꼭 주의하여 읽어주시길 바라며,
본 소재에 트라우마가 있으신 분은 이야기를 읽는 것을 재고해주시기 바랍니다.
필자는 이러한 소재의 위험성과 영향력을 충분히 숙지.
창작물과 현실을 명백히 구분하고있음을 본 글에 명시하는 바입니다. 감사합니다.
"사랑했었다. 다음번엔 꼭, 눈 감아도 마음을 알 수 있는 사람으로 만나자. /느린, 답신 "
▶ 과거
발단과 전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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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살, 매 주 갔었던 성당의 맨 앞자리, 그곳엔 언제나 아름다운 찬송가를 연주하던 형이 있었다. 같은 초등학교, 성당 친구이자 친한 형이었던 아이는 언제나 작은 바이올린을 몸에서 뗄 줄 모르던 아이였고, 작은 광호 또한 그런 아이의 연주를 옆에서 들을 기회가 꽤 자주 있었던 걸로 기억한다. 그리고 항상 즐겁게 연주하는 형을 보며 저도 함께 연주를 하고 싶다고 느꼈던 작은 바람이 곧 광호가 음악을 시작하게 된 본격적인 계기였다.
나도 형 옆에서 연주하고 싶어. 어린아이의 작은 마음가짐. 친한 형의 옆에서 연주하고 싶다 말하던 아이는 바이올린이 아닌 피아노를 골랐다. 왜? 라고 묻는 사람들의 물음에 아이는 그저 순수하게 같은 바이올린이면 재미 없잖아. 라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시작된 피아노는 아이에게 진한 인연이 되어주었다. 어차피 금방 질려서 축구나 하러 가겠지. 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예상과는 다르게 광호는 피아노를 빠르게 그리고 재밌게 배웠다. 그가 피아노와 함께 보낸 시간은 절대 짧지 않았다. 바람이 만든 결과였다. 피아노가 마냥 즐거웠고, 드디어 형과 같은 길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그에겐 새로운 재밋거리였다. 쉬는 날마다 광호는 다른 친구들과 만나는 것 대신 성당으로 곧장 뛰어가 형과 함께 노래를 연주하고 불렀다. 얼마 안되는 그 시간이 광호에겐 참 즐거운 시간이자 추억이었다.
그렇게 얼렁뚱땅 시작한 피아노는 어느새 광호의 인생 중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바이올리니스트였던 형과의 연은 계속 지속되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전부 같이 혹은 따라 올라왔고 둘의 연주 또한 더욱 같은 호흡으로 자라났다. 대학은 아쉽게도 헤어질 수 밖에 없었지만. 그래도 지속적으로 연락은 계속 했었던 걸로 기억한다. 서로의 시간이 겹치는 날엔 시간을 만들어 자주 만나곤 했었는데, 술잔을 같이 기울이던 그 어느 날 형이 의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말했다. 예전처럼 같이 연주했던 그 곡을, 정말 많은 사람들 앞에서 둘이서 직접 연주하자. 우발적인 약속이었고, 술기운 탓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 하리라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유치할지도 모르지만, 서로의 새끼손가락을 걸며 그 날의 허름한 술집에서 같이 약속을 했었다.
그렇게 술잔과 함께 약속을 주고 받은 뒤, 얼마 지나지않아 형은 바이올리니스트로 본격적으로 데뷔했다. 광호는 그의 데뷔를 진심으로 축하했고, 저도 곧 따라가겠다며 장난처럼 그렇게 얘기하곤 했다. 그가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하고 있을 때, 형은 천천히 입지를 차고 나갔고, 그러한 형의 노력과 세월이 보상이라도 주려는 것 마냥 매스컴에 점점 얼굴을 알리기 시작했다. 4년. 그 짧은 기간 사이에 형은 보란듯이 사람들의 정상에 섰다. 동경, 부러움. 다양한 감정들이 그의 머릿속에 빙빙 돌았다.
스물 네살, 이제 겨우 대학을 졸업할 시기, 아마 봄 쯤이었던 것 같았는데, 형에게서 연락이 왔었다. 같이 연주하기로 했었던 약속이 기억나냐면서. 지금이 그 약속을 지킬 때라고 말했다. 그의 공연에서 광호와 함께 반주자를 하고 싶다는 제안이었고, 그는 망설였지만 결국 그 제안을 수락했다. '생상스 서주와 론도카프리치오소' 그가 형과 함께 자주 호흡을 맞추곤 했던 곡. 그 곡을 수 많은 관중에게 펼쳐보였다.
여기까지가 사람들이 알던 그 유명한 피아니스트 박광호의 탄생과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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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와 절정
형은 그의 이름이 알려지는 걸 아주 기뻐했다. 아무리 우리가 배고프게 일하는 직업이라지만 너도 물 들어올때 노 저어야 하지 않겠냐. 장난스럽게 말했던 한마디였다.
그가 피아니스트로 데뷔하고, 눈 코 뜰 새 없이 바빴지만. 여전히 둘은 변하지 않았다. 그도 당연할게, 떨어진 시간보다 같이 함께 했던 시간이 훨씬 더 많은 시간을 이루고 있었다. 아무리 오래 만나지 않았더라도 얼굴이 마주치면 당장 어제 만난 사람처럼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스스럼 없는 사이가 둘이었다. 언젠가 다시 한 번 더 연주를 맞춰보자. 그렇게 또 다시 약속한게 엊그제 같았는데, 사건은 터졌다.
형이 학위위조 찌라시 논란에 휩싸였다. 위조? 형은 그런 걸 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이미 누구보다 잘 아는게 광호였다. 하지만 찌라시라는 것이. 한 번 퍼진 거짓 정보를 다시 원래대로 들이기란 쉽지 않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것 또한 광호였다. 이미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져버린 소문과 사람들의 원색적인 비난. 입장을 내놓지 않는 소속사, 모든 것을 형 혼자서 감당해내야만 했다. 그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고 그저 그런 형식적인 괜찮을거야. 라는 말 밖에 뱉을 수 밖에 없었다. 형은 그 연락에 어떻게 답했더라. 그냥 웃으며 그렇게 말했던 것 같았다. 너는 나처럼 살지말고. 화려하게 살아.
형은 결국 사람들의 시선과 비수를 견디지 못해 최후의 선택을 감행했다. 아마 전부터 많이 회의감을 느끼고 힘들어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사건을 계기로 완전히 무너져버린 것이겠지. 끝까지 제게는 한마디 말도 없던 채로, 그렇게 웃으며 형은 가버렸다. 유서도, 그 무엇도 없었다. 초라한 별의 죽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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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말
형이 죽었다는 연락을 뒤늦게 받았지만 장례식장에도 가보지 못했다. 이미 그 주엔 스케줄이 잡혀있었고 어떻게 조율을 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이제서야 얼굴을 알리기 시작한 신예였다. 더더욱 스케줄의 조정은 물의를 빚을 뿐이었다. 혼자 회장의 뒤에서 울다가도 무대 위에선 아무렇지 않은 척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연주를 해야했다. 비참하고 비참했다. 결국 장례식이 다 끝난 뒤에서야 형의 납골당을 찾아갈 수 있었고 뒤늦게 그를 향한 조문을 했던 기억이, 그의 가장 큰 상처였고 가장 강렬하게 뇌리에 박힌 기억이었다. 결국 그는 그의 마지막을 지키지도 못했고, 한 발 뒤늦게 와서야 후회하는 하나의 사람일 뿐이었다. 미안해, 그가 마지막으로 건넸던 제 친우이자, 하나뿐인 파트너에 대한 추모의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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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대울렁증
- 무대에 올라가기 전부터 긴장으로 인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사건 이후로 무대 위에서 받는 관중의 시선이 그는 두려워졌다. 무대가 무어라고 그의 장례식에 걸어가 추모조차 할 수가 없는가. 말로 비수를 꽂고 사람을 죽였던 또 하나의 살인자들. 그 사람들이 수 많은 관중들 중 한 명, 아니 더 나아가 관중 전부가 제가 동경하고 따랐던 형을 죽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절로 욕지기가 올라왔다. 그렇지만 이미 그는 프로의 자리에 올라왔고 형이 그렇게 원하던 삶을 그는 살 수 밖에 없다. 살아야만했다. 제 개인 사정 때문에 그동안 쌓아온 모든 걸 저버릴 수는 없어 현재는 대기실에서 청심원을 꼭 먹고 무대에 올라선다. 청심원이 없으면 아예 스테이지에 올라설 수도 없을 정도의 수준까지 증상이 악화되었다.
▶ 죽음에 대하여
- 죽음이라는 소재는 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였지만, 동시에 제 가장 소중했던 친우의 죽음이 그에게는 큰 상처와 쓰라림으로 다가왔다. 다시는 이런 일이 되풀이 되지 않도록, 그는 특히 제 주변 소증한 사람들에 대한 죽음과 관련된 다양한 일들에 예민하고 과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다. 혹여나 장난이나 협박과 같은 가벼운 의미로 쓰이는 죽음, 자살이라는 단어에도 예민하고 날카롭게 대응하곤 했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과 그에 대한 행동을 굉장히 싫어하는 듯. 상대방에게 감정이 동화되어 반응하는 면이 있었다.












